창조와 질서의 하나님 – 창세기 1:1-4
창조와 질서의 하나님 – 창세기 1:1-4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시간 말씀을 듣습니다. 먼저 말씀을 들고 선 이 부족한 자에게 은혜와 담대함을 허락해 주시고, 함께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은혜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함께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담임목사님께서 ‘말’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축복의 말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보면서,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연의 놀라운 현상들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도 했고, 우리 모두도 이런 모습이면 너무 좋겠는데 사실 힘든 환경에서 살다보면 찬양보다는 한탄과 원망이 나올 때가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소리를 듣곤 합니다. “내가 정말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셨어.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없는 것 아니겠어?” 또는 “아프리카에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또 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만사형통하는데, 침묵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관심이 없거나, 불의하신 분이 아니야?”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시각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환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며,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시고, 또 그런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믿습니다. 그 전제 하에 세상과 환경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왜 하나님은 방관하실까? 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실까? 왜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기아와 난민, 불의를 그냥 보고만 계실까? 모든 질문에 다 답을 할 수는 없지만, 때가 되지 않아서, 뭔가 뜻을 가지고 계셔서, 그리고 제가 내린 답 중 하나는 “그래서 너를 그곳에 두었다. 그래서 교회를 이 땅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주변의 연약한 자들과 시대의 불의에 대해 말씀하시고, 다스리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한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저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즘 열왕기하로 QT를 하고 있는데, 한 말씀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열왕기하 19:31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남유다의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을 무너뜨렸던 앗수르가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 앞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군대장관 랍사게가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조롱합니다.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을 내면 내가 말 2,000마리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만큼 남유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면서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제 공은 하나님께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그 날 밤 앗수르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치셨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럴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울부짖을 때 하룻밤 사이에도 반전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번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베테랑 조정사가 운행하는 비행기가 있습니다. 너무 실력이 좋아서 어떤 악천후에도 안전하게 운행하는 조정사입니다. 날씨도 완벽하고, 비행기 상태도 최고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상황입니다. 예외는 없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LA행 비행기입니다. 비행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일등석에 타고 있더라도 그 비행기가 파리행 비행기라면 당장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LA로는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 신실한 하나님을 믿고,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는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잘 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말씀 의지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 순종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의 해석은 두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포’로 보는 것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로 보는 것입니다.
창조의 이야기는 너무나 신비하면서도, 또 과학계와 종교계에서는 끝없는 논쟁의 주제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과학계는 천지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온전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과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빅뱅이론’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38억년 전에 ‘원시원자’, 또는 ‘우주 알’이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점같은 것이 폭발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면서 이 우주가 생겨났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벨기에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카톨릭 사제인 조르주 르메트르입니다. 그는 1927년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우주가 팽창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 팽창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 우주는 아주 작은 한 점으로 귀결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우주가 그 원시원자의 큰 폭발에 의해 생겨났다고 해서 ‘빅뱅이론’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이론은 처음에는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여러 이유 중 대표적인 한 이유는 이 이론을 주창한 사람이 바로 카톨릭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보았을 때 이 이론이 창세기 1장 내용과 너무 비슷하다고 해서 배척당한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계에서 이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또 다른 이론들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과학, 천문학과 관련된 유튜브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과학에서 말하는 용어 중 ‘이론’과 ‘법칙’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이 ‘법칙’이란 단어는 ‘무엇’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사과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하늘로 솟구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면, 빅뱅이론, 상대성이론과 같은 ‘이론’은 그런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이럴 것이다”,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즉,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그것이 더 그럴듯 하면 그 변화를 수용해서 바꾼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날이 흐리면 새가 낮게 난다’라는 사실이 있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새가 무거운 공기의 압력으로 높이 날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가 ‘새의 먹이인 곤충들이 습기에 날개가 무거워져 낮게 나니까 새들도 그 먹이를 잡으러 낮게 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4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각 단어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태초에’는 시간과 공간이 시작된 시점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 세상이 영원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시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한 끝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는 창조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설명합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 중 사람이라는 존재가 주인공이든, 엑스트라로든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창조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만든 신이 아닙니다. 내가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영광을 받으실 수 없는 그런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영광이신 분이십니다.
‘천지’란 말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거나,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창조하시니라’ 이 단어는 ‘무’에서 ‘유’를 만들 때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원어에서 이 ‘창조하다’라는 동사는 주어로 오직 ‘하나님’이라는 단어와만 함께 쓰입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신 특별한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능력은 우리의 창의성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의 첫 문장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휙 읽어버리고 지나갈 수도 있는 말씀이지만 성경에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이며, 문턱입니다. 이 말씀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성경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외면하고 넘어간다면 성경은 단순히 교훈과 도덕책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1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천지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 천지의 모든 것에 대해 소유권과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 이 천지를 만드실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비유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맨하탄 브로드웨이 블록 한 쪽 끝에 서서 “여기서부터 저기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이 다 내꺼야”라고 이야기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밤 하늘에서 보는 모든 별들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그 너머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소유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2절은 태초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혼돈,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상태를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단어들이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제 수준에서 생각이 가능한 비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머리 속으로 제가 하는 비유를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 풀어야 하는데 완전히 엉켜있는 실타래, 그 실타래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어떨까요?
– 우리는 항상 셀폰을 달고 살고 있지요. 그런데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셀폰을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요?
– 어지러운 제 책상 위의 모습, 또는 컴퓨터 책상 뒤에 얽혀있는 케이블의 모습?
–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마음 상태?
–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터널을 만나는데, 들어온지 꽤나 되었는데 실내등도 켜지지 않고 끝도 보이지 않는 상태?
–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지 모를 절망적인 상태? 자살하는 사람들이 그런 심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소망이 보이지 않는데, 내일도 소망이 보일만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
태초의 카오스의 상태는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이런 상태만으로도 우리는 멘붕을 경험하곤 합니다. 어쩌면 그런 상태가 태초의 카오스보다 더 우리에겐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 하나님의 숨결이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계획하고 계셨고, 준비하고 계셨고,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황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그 때에도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 그 손길은 그곳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3절. 그리고 마침내 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그 시간에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시간,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적인 시간에 계획을 마치시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그 ‘빛’은 태양빛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생명력’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계에서도 현재 우주의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고 하는 것의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도 엄밀히 말해서 아직 풀리지 않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인 것입니다.
4절에서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질서’의 시작입니다. 그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셨습니다. 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로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저는 가끔 요리를 합니다. 레시피도 찾아보고, 나름대로 생각도 해보고 열심히 만들어 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비주얼도 아니고, 맛도 아닙니다. 문제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완성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바로 상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은 하루 밤에도 반전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창조의 역사에 대해서는 과학계든 종교계든 논쟁이 많습니다.
우주의 나이에 대해 요즘 과학계는 138억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연대기를 작성을 하면 기껏해야 6천년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누락된 역사를 생각한다고 해도 1만년 이상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 간극이 너무 큽니다. 이 시기를 맞추기 위해 종교계에서는 몇가지 이론을 내놓습니다.
– ‘젊은 지구론’은 우주의 역사가 과학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과학의 오류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 ‘오래된 지구론’은 반대로 창세기 1장의 ‘날’이라는 단어가 실제 지금의 하루가 아니라 엄청 긴 특정 시기라고 해석하면서 그 간극을 메우려 합니다.
– ‘간격 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년의 시간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기간 중에 어떤 재난이 있어서 카오스 상태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복음주의 신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입니다.
– ‘문학적 해석’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을 과학과는 상관없이 그저 문학적 설화로, 의미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저도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만 “이거다!”라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 우주가 왜 시작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과학계는 ‘우연’이라는 이유 외에 어떤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관찰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같이 나누고자 한 것은 우주의 창조를 학적으로 증명하고 무엇이 맞는지 따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한가지 제가 분명히 믿는 것은 나중에 저는 이 문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물어볼 것이 참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4DX 파노라마로 이 창조의 역사를 보여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이런 질문들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제게는 아주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성이 깬 이후로 처음으로 접했던 하나님의 말씀이자, 제 인생의 요절입니다.
1969년에 저는 만들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제 삶의 모습은 ‘혼돈’ 그 자체와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배 중에 이야기하기 너무나 부끄러운 죄악들을 저지르곤 했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가정의 문제로 손목을 그을까 하는 생각을 숱하게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도도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신학기에 선교단체를 다니던 선배들이 쫄면을 사준다고 해서 먹고 성경공부에 처음 참석해서 나눈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주제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을 무척 좋아했던 저는 4학년 선배에게 ‘우주는 127억년 전에…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배웠었습니다. 지금은 138억년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50억년 전에, 지구는 45억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이 성경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왜 성경은 지구가 먼저 만들어지고 해, 달, 별이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하느냐며 따졌었습니다.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선배를 보며 우쭐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그 해 말 저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드리겠다.”
2학년 초에 신앙의 슬럼프가 왔을 때 지나온 20년의 삶 중 기억나는 모든 것을 적어보기로 했었습니다. 노트 한권을 채우고 제가 깨달은 것은 저는 하나님을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한 순간도 제게서 떠나계셨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혼돈 그 자체였던 제 삶 위에 하나님의 숨결이 운행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제게 “빛이 있으라” 명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제게 질서를 잡아 나가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하나님의 몇 째 날인지 모르겠고,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한 모습이 아닐 것 같아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실 때까지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결론
세상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주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지구 온 해변의 모래알과 비슷하거나 더 많을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흔히 ‘별’이라고 이야기하는 그것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저 ‘태양’과 같은 천체입니다. 그 별들은 우리 태양처럼 여러개의 행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 하나가 은하계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 상상이 가십니까?
가장 유명한 천체 사진 중 하나는 1977년 탐사를 위해 지구를 떠나 현재 매초당 17km의 속도로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1990년 카메라를 돌려 찍은 지구의 사진입니다. 인터넷에서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검색하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지구가 점 하나로 표시됩니다. 이것이 지구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지금 허블 망원경,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130억년 가까운 과거를 보고, 온 우주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더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이 우주보다 더 크실텐데, 이런 하나님이 우주의 점 하나도 되지않는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음소리마저 들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우리는 매일 매일 숱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또 그 중 많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 줍니다. 애석하게도 그 문제라는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아프리카 기아문제, 지구 온난화, 바다거북이 코에 박혀있는 플라스틱 빨대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절망스럽게 하는 문제는 바로 내 앞에 직면한 건강의 문제, 생계의 문제, 인생의 문제들입니다. 중동에 전쟁이 나면 기름값이 올라서 힘들지 않을까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절망하곤 합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모두 썩어 있습니다. 혹시 이런 혼돈의 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Back to Basics’란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의 시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창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뜻을 두시고 우리를 만드셨고, 지금 그 상황이 아무리 혼돈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숨결은 그 혼돈 위에, 그 문제 위에 있습니다.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말씀하실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 창조의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빛이 있으라 명하시며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창조와 질서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혼돈의 상황에 침몰되지 않고, 그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구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저희 삶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저희에게 빛을 명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예물과 함께 저희 마음과 헌신을 기뻐 받아 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저희 심령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저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 생명의 은혜와 날마다의 양식을 허락하시고, 저희를 사용하사 주변과 땅 끝까지 하나님의 복이 전하여지게 하옵소서. 드려진 예물이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전하는 주의 사역에 귀히 사용되게 하옵소서. 드린 손길 하나 하나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구하고 아뢰는 모든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 뜻 안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