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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사도 바울 - 서론

박기현
작성자
박기현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양성하고, 선한 사람들의 따뜻한 네트워크에 AI 기술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더해 나갑니다.

1. 바리새인,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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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요구하다’, ‘크다’는 뜻)로 헬레니즘의 중심도시인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태어났다. 다소는 주전 1세기경 헬라 철학의 본고장이었으며 동서양의 합류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헬라 철학과 로마적 세계관이 동방의 신비주의와 혼합되어 그 도시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사울은 그러한 지역적 요소로 인하여 헬라와 유대의 교육을 겸하여 받게 되었고 유대인으로는 드물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엄격한 유대교의 신봉자로서 사울에게 엄격한 유대교 교육을 받게 하였다. 바리새인 가정의 교육을 받아 세 살이 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구약성경을 들었고, 다섯 살에 글을 배웠다. 열 살에는 유대교의 중요한 율법들을 암송하였고, 열세 살 때는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유대 민족 중에서도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복종하고 지키는데 열심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바리새파라고 부른다. 사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최고 훈련을 받은 지도자였고, 율법 학자였다. 유복한 바리새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울은 당시 유명한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어 철저한 유대교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즉, 절대적인 유일신 신앙과 엄격한 윤리관념, 율법에 대한 순종 등 형식과 의식을 중시하는 바리새적인 요소들이 그의 생활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새로 일어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에게 적으로 보여 유대교에 열렬한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이 박해의 첫 희생자가 스데반이었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바리새인인 사울이 가담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열정적이었던 그는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청하여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잡아오려고 떠났고, 그 도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아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2. 선교사,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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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자들의 선봉이 되어 활약하였던 사울은 천사 같은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는 스데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한 자락 의혹이 스쳤다. 이 때 사울의 마음 밭에 한 알의 밀알로 떨어진 스데반의 희생은 다메섹으로 향하는 바울의 심령에 생명의 꽃으로 피어났다.

태양보다도 밝은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의 말씀에 거꾸러진 사울은 ‘바울’(‘작은 자’라는 뜻)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주님을 보는 순간 여태껏 그를 주장해오던 육안은 멀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영안이 떠졌다.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됨을 체험한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으면 구원받는 참 진리를 터득한 것이다. 주님과의 기적적인 만남으로 성령세례를 받고 완전히 변화된 새사람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을 위한 새 인생을 시작한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풍부한 학식과 교양을 겸비하고 뛰어난 어학 실력까지 갖춘 ‘준비된 그릇’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세차례에 걸쳐 선교여행을 하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하늘나라를 확장하는 바울의 활동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받은 엄격한 교육은 주님의 뜻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더 나아가 신약성경의 절반이 넘는 13권 가량의 서신을 기록하는 업적을 남기게 하였다. 특히 4권의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은 감옥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옥 생활이 주는 처절한 고통과 절망감도 바울에게는 오히려 더욱 뜨거운 믿음과 소망찬 메시지를 남기는 기회였던 것이다.

1) 제 1 차 전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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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주후 45년에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지시에 의하여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파송되었다.(행13:1-3)

구브로섬 바보성에 이르러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하는 중 박수 바예수가 방해하자 바울이 대적하여 그를 소경이 되게 하고 여기서 ‘바울’이라 개명하였다.(행13:4-12)

그 다음 소아시아로 건너가서 버가에 이르니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행13:13)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두 안식일간 회당에서 열심히 전도하던 중 유대인의 핍박으로 인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향하였다.(행13:14-52)

이고니온에 이르러 전도하자 허다한 사람이 순종하였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고자 하여 루스드라와 더베 근방으로 가게 되었다.(행14:1-7)

루스드라에 가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쳤더니 바울은 허메(헤르메스), 바나바는 쓰스(제우스)라 하여 제사하려 하는 것을 금하였다. 이 때에 유대인들은 따라와서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내쳤으나 일어나 다시 성으로 들어가 전도를 하는 열정을 보였다.(행14:8-20)

그 후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회정하여 먼저 전도한 곳에 들러 권면하고 장로를 세워주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14:21-25)

2) 제 2 차 전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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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50년에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할 때 마가의 문제로 다투다가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지나(행15:36-41)

루스드라에 이르러 그 지방에서 칭찬 듣는 모범적인 청년 디모데를 만나 데리고 부르기아와 갈라디아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르니 밤에 마게도니아인이 현몽하여 자기 지방에 와서 도우라 하므로 그리로 건너가게 되었다.(행16:1-10)

빌립보성에 들어가니 이 성은 소아시아 방면에서 건너갔던 유럽의 첫 성이다. 안식일에 기도처를 구하려 강변에 나갔다가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자주장사 여인 루디아를 만나 전도, 세례를 주고, 점하는 귀신 접한 여자를 고쳐 준 것으로 누명을 써 옥에 갇히게 되었다. 두 사람이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니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간수가 자결하려다가 바울의 만류로 그만 두고 권속으로 더불어 믿고 세례를 받았다.(행16:11-40)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전도하였더니 많은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순종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소동하므로 밤에 베뢰아로 피하였다.(행17:1-9)

베뢰아의 교인은 성경을 잘 상고하는 자들이었다. 역시 헬라의 귀부인과 많은 남자가 순종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따라와서 소동을 일으키려 하매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두고 바울 혼자 아덴으로 갔다.(행17:10-15)

아덴에서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로 더불어 쟁론도 하고 전도하여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그외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였다.(행17:16-34)

그 다음 고린도에 이르러는 동업자 장막 만드는 사람 아굴라 내외를 만나고 베뢰아에 떨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1년 반 동안 있으면서 전도하여 회당장 그리스보와 많은 신자를 얻고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써서 보냈다.(행18:1-17)

회정하여 수리아로 갈 때 아굴라 내외와 함께 하여 겐그레아에 이르러 바울은 서원함이 있어 머리를 깎고 에베소와 가이사랴를 둘러 3년 만에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18:18-22)

3) 제 3 차 전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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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차 전도여행은 주후 54년에 출발하여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지나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고(행18:23)

에베소에 이르러 회당에서 석 달 간, 두란노서원에서 2년간 전도하며 희한한 이적을 많이 행하니 유대인과 헬라인이 많이 믿고, 또 마술사들이 많이 믿어 그 책들을 모아 불사르니 그 값이 은 5만이나 되었다. 이리하여 주의 말씀이 세력을 얻어 흥왕하여 그 근방에 7교회(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에베소)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행19:1-20)

그 후 마게도냐에 이르러 제자들을 권면하고 고린도후서를 써 보낸 후 헬라에 가서 3달간 있다가(행20:1-5)

드로아에 이르러 밤중까지 강론하는 중 유드고라 하는 소년이 졸다가 삼층 누에서 낙사한 것을 다시 살리고 떠나(행20:6-12)

앗소와 미둘레네를 지나 밀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를 청하여 권면한 후 작별하고 배를 타고 고스, 로도, 바다라, 두로를 지나(행20:13-21:16)

가이사랴에 상륙하니 빌립 집사의 딸들과 아가보가 예언하기를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을 당한다고 하나 바울은 결박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한다고 하고 떠나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행21:7-16)

4) 로마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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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보고 죽이려고 잡았다. 천부장이 그 소문을 듣고 나와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다가 층대에서 군중에게 변명하고, 이튿날은 공회 앞에서 설명하니 무리 가운데 40여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기로 맹세한 것을 천부장이 듣고 밤중에 호위병 470명으로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보내었다. 닷새 후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와서 벨릭스에게 고소하니 바울이 변명하고 2년 후에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도 변명하였다.(행21:27-26:32)

이와 같이 가이사랴 감옥에 2년간 갇혀 있다가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타고 출발하여 로마를 향하였다. 그 노정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시돈을 들려 구브로, 길리기아, 밤빌리아 등의 해안을 지나 무라성에 이르러 알렉산드리아 배를 갈아타고 니노와 살모네 사이를 지나 그레데섬 미항에 이르러 바울이 말하기를 풍랑으로 큰 손해를 볼 터이니 떠나지 말자 하나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고 하는 자가 많으므로 행선하다가 바울의 말대로 폭풍을 만나 14일간 큰 고생을 할 뿐 아니라 짐과 기구를 바다에 던지고 해와 별을 보지 못하니 구원의 희망이 없을 때에 바울이 모든 사람을 위로하고 음식을 먹게 하였다. 그대로 진행하다가 두 물이 합하는 곳을 만나 파선이 되므로 혹은 헤엄으로 혹은 목판에 의지하여 전원 276인이 상함 없이 멜리데섬에 상륙하였다. 이 때에 토인들이 불을 피우고 영접하거늘 바울이 나무 단을 들어 불에 넣으니 그 나무속에 있던 독사가 나와 손을 물었으나 무사하였다. 3달을 유하는 중 섬의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모든 병자를 고쳐주니 모든 사람이 친절히 대접하였다. 그곳을 떠나 시실리섬에 있는 수라구사에 들러 이달리아 본토 레기온을 지나 보디올에 이르니 형제들을 만나 7일을 유하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온 로마의 신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로마에 도착하였다. 바울은 옥중에 있는 2년 동안 자신이 유하는 셋집에서 사람들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행27:-28:) 바울은 그 사이에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등 네 서신을 써 보냈고, 그 후에는 5년간 마게도냐, 헬라, 에베소, 서반아 등지에서 전도사역을 감당하였다. 마게도냐에서는 디모데전서를 써 보내고, 다시 로마 옥에 갇혀서 디모데후서를 써 보낸 후 주후 68년 6월에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 당하였다.

3.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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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여행을 하는 기간 동안 수많은 박해가 바울을 괴롭혔다.(고후11:23-27) 예수님이 바울을 불러 사도로 세우실 때 이미 수많은 박해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행9:16)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하여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고 …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빌4:11-12)고 할 만큼 그의 생애는 특이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의 경지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사는 모습이었다.(갈2:20) 마지막까지 바울은 세계 만민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일평생 싸운 신앙 용사였다. 그래서 바울은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로마를 향해 출발하지만 자유로운 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특별한 대우를 받기도 하였고 옥중에서 여러 교회에 옥중서신을 써 보내기도 하였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심을 갖고 있었던 바울은 산 신앙의 용사요, 기독교의 거인이다.